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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드로 코스타의 디지털미학
무엇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지, 무엇을 위해 영화를 보는지를 물어본다. 이 질문은 언제나 영화의 핵심이었지만 이미 거창한 어떤 것이 되 버리고 말았다. 목적에 대한 점검이 거창한 혹은 손쓰기 어려운 질문이 되었을 때 이미 삶과 영화는 너무 멀리 분리되었거나 삶은 시스템과 너무 가까워져있는 것일지 모른다. 영화는 시스템에 길들여진 삶에 붙어 그들과의 유착 형태로, 기생의 형태로 살아남아있다. 가장 순수하다고 믿고 싶은 감정마저 이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라면 우리는 영화의 무엇에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을까. 자본 권력에 포섭당한 생각과 몸이 그 같은 체계를 양산하는데 주체적으로 나서는, 새로운 다단계 형태가 된 영화와 카메라 안과 밖의 사람들이 또 다른 사회적 계층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현실에서 독립영화든 예술영화이든 어떤 특별한 영화를 만들고 보는 일이 사회적 저항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아주 어렵게 보인다.-
페드로 코스타 감독은 지금 35mm 필름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인지를 묻는다(그는 고다르주의자이고자 한다). 코스타 감독은 시네마는 이미 고전 속으로 사라졌거나 고전에만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는 영화 학교나 영화 제작 현장에 있었지만 정작 자신이 영화를 배운 곳은 시네마테크였고 그곳에서 존 포드의 전작, 오즈와 미조구치, 자크 투르네르나 프리츠 랑, 로셀리니와 고다르의 영화들을 비롯한 모든 ‘영화’들을 전부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코스타는 현재 영화의 총 생산 과정 자체를 부정하며 그것을 새로운 형태로 구조화하고자 한다(코스타 감독은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 소수의 스태프와 10년 넘게 가족처럼 영화를 찍고 있다). 지금 카메라로 영화의 진정성과 그 본래의 정신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영화 생산 방식의 총체적인 변화라는 형식적 실험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이야말로 현대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영화적 저항이라고 말한다. 올해 전주 영화제에서 발간한 페드로 코스타 책자에 실린 인터뷰(키노 81호에 실린 최은영과의)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오늘날 진정한 영화는 끝장났으며 그와 더불어 진정한 삶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꿈을 보기 위해 영화를 보러 가긴 하지만 정작 영화 자체를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영화는 커다란 자본주의 시장의 결정체일 뿐이다. 독립영화들도 전혀 독립적이지 않다. 사실 독립적이라는 것은 없다. 어떤 이든지 누구에게서 돈을 빌리기 마련이기 때문에. 물론 예외는 있지만 극히 적으며, 사람들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필름 덩어리를 만들 뿐이다. 허우 샤오시엔이든 누구든 간에 그들의 영화에서는 단지 몇 초 혹은 몇 분 분량만 진정한 영화라고 부를 수 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가 필요하지만 이제 더 이상 국가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에 따른 가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한데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몇 개의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이 있기는 하지만 1년에 한 다섯 편쯤 될까. 나는 영화가 그립다. 나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매일 노동자처럼 열심히 영화를 만들고 싶다. 과거의 할리우드의 스튜디오로 들어가 일하고 싶다. 오늘날의 할리우드가 아니라. 오늘날의 할리우드는 과거와는 매우 다른 어떤 것이다. 현재 내가 비디오로 작업하는 것은 일종의 원칙을 갖는 것이다. 나는 이제 내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조금씩 찍어나갈 수 있다. 나한테는 비디오테이프가 있고, 그건 매우 싸기 때문이다.”
“(주로 빈민층을 다루는 이유에 대해) 영화란 매우 현실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현실을 찍기 위해서는 거리의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찰리 채플린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내게 있어서 채플린은 영화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고... 때때로 영화는 어떤 것을 바꾸어낼 힘을 가지고 있다. 내가 만약 그들로부터 멀어진다면 나는 휴머니티로부터, 영화로부터 분리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매우 불행하며 사람들은 너무나도 고통 받고 있고 뭔가를 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 보여주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지에 있으며 그것은 모럴에 관계된 것이다... 내가 영화에서 계속하고자 하는 것은 물질적인 어떤 것을 만드는 것이다. 테이블이나 의자, 신문이 우리에게 봉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거기에는 또한 즐거움이 있다.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데서 오는 최소한의 즐거움이 바로 그것이다. 물질적인 영화라는 것은 예쁜 화면들을 만들어내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움직임, 느낌의 방식이며 영화가 가진 그러한 정신은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다... 코뮤니스트 체제는 희생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의 코뮤니즘은 무엇이든 요구하고, 또한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코뮤니스트 사회로 가야 한다면 그것은 결국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이다... 나는 모든 것이 예술로 귀결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내게 영화의 의미를 묻고 나의 의도를 묻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이 없다. 말하는 것은 영화 그 자체이다. 우리 앞에 놓인 테이블만 보더라도 만들어진 방식 그 자체로 우리에게 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만약 이 테이블이 잘 만들어졌다면 영원히 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금방 부서져버릴 것이다. 그것이 예술작품의 아름다움이다. 우리가 영화에서 해야 하는 것은 매우 단순한 것이다. 카메라가 이 순간, 이곳에서 어떤 얘기를 해야 하는가. 다음 쇼트는 무엇인가. 거기에는 어떤 예술적인 비밀도 숨어 있지 않다.”
코스타 감독은 마지막 상업 영화 제작 방식의 <뼈> 이후 완전히 달라진 영화에 돌입하였다. 그것은 <뼈>의 전작이기도 한 <용암의 집>의 제작 과정의 일화와도 맞물려 있는 것이다. 그는 <용암의 집>을 자국인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섬 카보베르데에서 찍었는데 이는 자신의 영화에 출연했던 여배우가 그 지역에 사는 자신의 가족과 일가친척들에게 편지와 선물을 전달할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코스타 감독은 그 빈곤 지역을 방문하여 편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 곳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곳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그는 프로듀서가 진행하는 상업 영화 제작방식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현지 배우들만 쓰기는 어려워 기성 배우들을 캐스팅하였다. 이 영화 과정에서 그는 스태프와 배우들 간에 마찰을 겪었고, 마음에 맞는 몇 명 스태프들만 데리고 몰래 영화 현장을 도망쳐 나와 자신이 찍고 싶은 현장들을 찍기도 했다고 털어놓는다. 데뷔작 <피>의 대중적 성공 이후 모처럼 잡은 영화제작기회였지만 그는 이런 방식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을 느꼈고 그것은 이 지역의 빈곤과 이 사람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 이어 찍은 <뼈>에서도 여배우는 자신이 캐릭터를 연출하는 방식에 끊임없이 반발했고(왜 이 장면에서 슬퍼야하는가, 지금 나는 기쁜데라는 식의) 이것은 감독에게 영화의 리얼리티라는 것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상업영화를 포기한 이후 코스타 감독은 홀로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뼈>의 여배우인 반다의 집에서 2년 여간 함께 생활했다. 초반엔 그저 사실적인 다큐멘터리라도 좋다는 심정으로 찍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연출이 필요했고 사운드 기술자나 편집 기술자들이 간혹 필요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는 거의 혼자서 영화의 이 같은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카보베르데에 사는 유일한 백인 여성인 반다의 방과 그녀의 흑인 이웃들의 집에 카메라를 세워 놓고 철거 직전에 놓인 삶의 공간을 관찰했다. 그것은 많은 인내를 요하는 것이었다(촬영분량만 140시간 정도였다).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의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코스타는 이들 삶의 동선을 알게 되었다. 특정 시간에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이들과 함께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는 방문과 동거라는 과정을 통해 그 시점과 구도를 영화에 담았다. 그는 이것을 바로 영화의 리얼리티라고 말한다.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때론 형편없이 보이는 술주정뱅이와 마약중독자의 일상은 그의 영화에서 퇴락한 삶의 단면이 아니다. 이러한 삶의 형태가 굳어진 물리적 구조물의 견고함을 그는 묵묵한 침묵의 방식으로, 오즈의 완벽한 정물화 구도로 담아내는 것이다. 무의미의 유의미화. 이 말이 이미 오염된 것이라면 의미에 대한 저항. 관객의 영화 보기를 심화시키는 과정.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들여다볼 것을 주문하는 것. 숨김의 미학. 알 수 없는 것을 이성과 과학으로 재단하는 폭력으로부터 저항하는 것. 가장 사실적이면서도 그렇기에 더욱 알 수 없는 일상의 반복을 지켜보는 것. 영화 미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은 코스타 감독에게 자본의 혜택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성취되어야 하는 어떤 믿음과도 같은 것이다. 그에게 디지털+비디오는 가장 현실적인 정점을 필름적인 미학으로 찍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비디오가 감당할 수 없었던 영화 미학적인 고민들을 완전히 성취한 것은 비디오의 원래 목적보다 더 나아간, 보다 더 진보적인 방식이 된다. 빈민의 현실을 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정점을 찍어 내는 것. 그럼으로써 빈민의 미학이 탄생한다. 영화가 더 이상 자본을 위한, 자본에 충실한 영화를 찍지 않는다고 선언할 때, 즉 지배 권력이,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할 영화가 더 이상 없어질 때, 영화는 세상을 구조를 재편할 힘을 가질 수 있다.
2. <용암의 집>과 <반다의 방>
<용암의 집>(1994)의 일화는 앞서 언급한 것 외에도 흥미 있는 것이 있다. 레앙 역을 맡은 (짐 자무시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한) 이삭 드 번콜이란 흑인 배우에 대한 것인데 여기서 그는 식물인간이 된 건설 노동자로 출연해 후반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병실에 누워있다. 이 배우는 연기를 하고 싶어 했고 이 때문에 코스타 감독과 주먹다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누워서 뭐라도 움직여야 한다며 근육을 움직였고 이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페드로 감독이 기성 배우들의 연기를 사실적인 공간에서 연출하는데서 느낀 불편함이란 이 사례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극영화 배우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어떻게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지 않을 수 있는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울 가난한 사람들, 방에서 혼자 있을 때 얻는 시선으로부터의 의식적 자유. 코스타 감독은 마약 중독에 걸린 채 철거 직전의 마을에서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반다의 은밀한 방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간다. 반다는 때론 집요한 감독을 쫓아낼 정도로 기가 세고 자기주장이 강하다. 그녀는 이 방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 고집한다. 그런 그녀의 행위는 카메라의 시선을 이겨낸다. 반다는 환각제에 불이 잘 붙여지지 않는 것 때문에 요동할지언정 감독이 때론 설정하는 상황 속에서도(친구들이 찾아와 함께 나누는 대화들) 카메라를 의식하는 경우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게 연출한 것인지 아닌지, 다시 말해 이 영화가 80퍼센트의 연출과 20퍼센트의 비연출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는 영화의 핵심은 아니다. 연출에서 사실이 발생하고, 비연출에서 연기(가장)가 엿보이기도 한다(감독은 시간이 지나면서도 자신도, 반다도 어느 장면이 리얼한 것이고 어떤 장면이 연출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코스타 감독은 <용암의 집>을 통해 죽음을 배우가 연기할 수 없다는 태도에 이르렀다. <용암의 집>은 자크 투르네르의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1943)에 대한 매우 독특한 리메이크 작이다. 이것은 척박한 현실에서의 인물들의 실제적인 죽음들로 구성되어있는 영화이다. 개가 죽고 나서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죽어간다. 하지만 죽인 자는 없다. 그는 여기서 카보베르데라는 용암으로 이루어진 섬을 의문의 시체들로 이루어진 무덤으로 은유한다. 모두가 죽고 나서 아이만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데뷔작 <피>와도 같은 결말이다. 죽음에 대한 성찰적인 기존의 극영화와는 달리 <반다의 방>(2000)에서 죽음은 타인에 대한 기억, 혹은 현실 인물의 캐릭터화라는 과제로 넘어가 있다. 반다와 그녀의 친구들은 마약 과다 복용으로 죽은 친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더 이상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코스타 감독은 일부러 이 사건을 시간이 지난 다음에 연출하여 찍었다). 감독은 이 영화 후 <행진하는 청춘>에서 <반다의 방>의 반다는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반다도 이와 같은 말을 했다). 그는 현실에서도 이와 같은 캐릭터의 죽음은 항시 발생하는 것이라며 자신은 루비치처럼 죽음을 가볍게 다루는 방식을 선호하게 되었다고 말한다(이 가볍게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설명이 필요하다. 감독의 현실 윤리적인 태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영화에서 보여주어야만 하거나 기억해야만 하는 ‘방식’으로서의 죽음, 혹은 영화 내에서의 죽음이라는 형식에 대한 함의 같은 것에 가까운 표현이다. 즉 가치적으로 덜 중요함이 아닌 형식적인 의미로 다루어지는 것에서의 가벼움을 뜻한다). 반다의 방 바깥에서 철거가 이루어지는 과정과 방 안에서 마약을 흡입하는 장면은 완전히 이질감이 느껴지도록 이어 붙여져 있다. 그녀는 거의 철거에 관심이 없다. 양배추를 팔기 위해 집 밖을 나갔을 때에야 그러한 광경들을 목격했을 것이다. 흑인의 집의 내부와 외부는 이와 다르다. 그의 집엔 직접 철거물이 들어와 벽을 허물어낸다. 그는 방 안에서 현실을 직시한다. 하지만 그는 초를 켜고 집안의 닦고 손질하는 일에 전념한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짐을 빼고 이사하는 와중에도 마약을 피워대거나 친구들을 불러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에 몰두한다. 아무런 제스처도 없는 삶의 습관들이 그대로 남아있을 때 우리는 곧 꺼질 촛불, 곧 사라질 삶에 대한 이상한 애착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것이 오래된 관습이라면 디지털 극-다큐 혼합물인 이 영화는 가장 고전주의적인 어떤 것을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구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된다.
3. 김동원의 비디오 다큐멘터리
빈 영상 시절에 제작한 <야고보의 5월>(1986)이란 단편 영화에서 김동원 감독은 신의 사제로, 예수의 제자로 헌신했던 젊은 날의 기억을 보여준 후 빈민 다큐멘터리 활동가로서의 계몽적 주장을 이어간다. 놀라운 것은 전반부의 연출이다. 이것은 감독의 청년시절에 대한 재연인데 여기에는 사실적인 장면들을 연출한 효과들이 있다. 감독의 친할머니가 등장하고 동네에 노는 꼬마들이 그대로 담기며, 이 아이들의 공이 쏜살같이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의 거리로 흘러가는 장면들이 있다(이것은 연출된 것인 듯도 하다). 화면 밖의 내레이션에 의하면 감독은 그물(생업)을 버리고 예수를 쫓은 야고보의 삶을 고민하며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거리를 배회하는 것이지만 이에 조응하는 이미지들에는 아찔할 정도의 현실적 환기들이 있다. 이것은 거의 20년을 넘어 최근에 정재훈의 <호수길>(2009)에서 본 이미지들이기도 하다. 시네마디지털서울(CinDi)의 기획물로 짐작되는 <호수길>은 <반다의 방>에 대한 대한민국 버전, 즉 저항하는 사람이 없이 그들이 키우던 동물들만 남겨진 현실에서 ‘반다 없는 반다의 방’에 들어간 카메라의 기록물이다. 철거 영상 전 담겨 있는 마을의 인물들은 아이나 노인뿐이다. 이 어린 아이들의 놀이에 완전히 참여한 상태에서 디지털 카메라가 담아낸 사운드(아이들의 반복적인 괴성, 개와 고양이의 반복적인 울음)는 거의 일렉트로닉보다도 더 날카롭고 서늘한 것이다. 이것은 김동원 감독의 완전히 흔들리고 휘어진 상태의 비디오 화면에 대한 섬세한 디지털 복원 작업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김동원 감독의 빈 영상 시절의 작품들에는 정치적 탄압의 시기를 거쳐낸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벼랑에 선 도시 빈민>(1990)에는 텔레비전을 비판하는 양식이 존재한다. 이상적인, 현실괴리적인 이미지로 빈곤을 가치절하한 채 자본을 미화하는 프로그램들을 보여주고 나서 감독은 한 빈민의 인터뷰를 보여준다. 이 남자는 텔레비전은 우리가 사는 것과 먹는 것, 그러한 현실들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들을 보여줌으로 우리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무엇이 빈민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가에 대한 탐구물은 아니지만 서민들의 애환을 끝없이 실토하게 만듦으로써 영화를 보는 이에게 빈민의 의식에 대한 계몽적인 효과를 발생시킨다. 오늘날 김동원 감독을 있게 한 <상계동 올림픽>(1988)의 정치적 함의는 분명하다. 감독은 올림픽이라는 국가 위상의 경쟁무대에서 도시 경관의 미학을 위하여 철거되는 빈민촌의 투쟁에 뛰어든다. 역설적으로 이 과정엔 경관의 미학이 없고 사라지는 미학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영화의 초반과 엔딩에서 분명하게 보인다. 가설적이고 인공적인 아파트의 풍경엔 안타깝게도 그들이 구현하려 했던 경관의 미학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모르는 자들의 개발과 아름다움을 가난한 삶에서 발견한 김동원 감독의 카메라는 자꾸 부딪히고 거칠어진다. 개발도 서툴고 저항도 서툴기만 하다. 이 나라의 가장 급진적인 운동에 참여한 빈 영상과 푸른 영상의 비디오는 이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담고 있는 명품이 된다.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 투쟁의 기록과 영화적인 고민이 아닌 오직 현실적인 고민과 그것의 기록만으로도 족하였던 다큐멘터리의 역사가 있다. 내 옆의 빈민을 먼저 볼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 영화들을, 예술적으로 견고한 영화들을 보아야만 하는가. 거리로, 가난으로, 죽음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견고한 미학으로 담아 낸 50년 전의 네오리얼리즘의 영화들에서 현재의 우리가 감탄하는 것은 무엇에 대한 것인가. 모더니즘에 대한 찬사인가. 최소한의 신의조차 사라진 전후의 가난 속에서 <독일 영년> 속 소년의 죽음은 무엇이었던가. <외침>에서의 남자의 죽음은 또 어떠한가. <달콤한 인생>에서 남자의 자살은 또 무엇인가. 반다는 현실의 캐릭터로서 가난과 마약 속에서 한 번 죽고 나서 다시 행진할 수 있었지만 소년과 그 남자들은 다시 살아날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세상의 종말을 보았고 겪었기 때문이다. 이후 로셀리니와 안토니오니는 어떤 영화들을 찍게 되었는가. 네오리얼리즘 영화에는 정착도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도 없다. 떠도는 운동들에서 발생되는 것은 죽음이고 그 죽음만이 유일한 정착이고 저항이다. 리얼리즘을 미학이라 지칭하는 순간 그것은 죽음으로 경계로 내몰린 현실의 리얼리티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될 수도 있을 혐의를 동시에 갖게 된다. 영화의 목적을, 그것의 존재론을 현실 안에서 고민하자는 것은 너무 오래되고 식상한 주장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즈의 영화를 보고 영화의 명제와 진리라며 떠들어대는 것과 그것을 보고 나서 페드로 감독같이 영화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페드로 코스타와 김동원 감독의 영화는 상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빈민 속에서 미학을 발견했다. 다시 물어보고자 한다. 오즈의 영화에서 정말 당신을 무엇을 보았는가.
- 2010.05.07
김시원(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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