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MBC 삼키려는 ‘MB 정권’ [아침신문 솎아보기] 엄기영 사장 사퇴, 언론계 술렁(미디어오늘)
설 명절을 앞두고 언론계는 다시 술렁이고 있다. 이번에는 MBC 엄기영 사장이 임기를 1년 앞두고 사퇴를 선언했다. 이번에도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시나리오’가 배경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영방송 MBC를 정권 입맛대로 바꾸겠다는 의도를 방송문화진흥회 친여 이사들이 실행에 옮겼다는 분석이다. ‘언론장악’이라는 정치적 부담에도 무리수를 선택한 이유는 6월2일 지방선거를 위한 준비 작업으로 보인다.
공영방송이 언론 본연의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을 잃고 대통령 찬양에 초점을 맞춘다면 국민은 여당에 몰표를 던질까. 이명박 정권에 압승을 몰아줄까. 지방선거에서 ‘MB 정권’의 언론재편 의도가 성공으로 끝날지, 처참한 실패로 끝날지는 4개월도 남지 않은 지방선거에서 ‘MB 후보’들이 얼마나 많은 표를 받을지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9일자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엄기영 사장 전격 사퇴>
국민일보 <금호그룹 형제간 분리경영>
동아일보 <압수대상 디스크 빼돌린 민노 사무총장 체포나서>
서울신문 <미-중 무역보복 전면전 치닫나>
세계일보 <엄기영 MBC사장 사퇴> 조선일보 <MBC 엄기영 사장 사퇴>
중앙일보 <"우즈벡 공항 기지 미군이 쓸 수 있게 MB가 도와달라">
한겨레 <'방문진 전횡 반발' 엄기영 MBC 사장 사퇴>
한국일보 <"입학사정관제 취지 무색 사교육비 절감 기대 이하">
기사 다 보기
▲ 한겨레 2월9일자 1면.
공영방송 MBC의 사장이 임기 1년을 앞두고 다시 물러나게 됐다. 공영방송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송을 말한다. 권력의 입맛에 맞게 운영되는 방송이 아니다. 공영방송 사장이 권력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임기 도중 자리에서 물러나면 공영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언론은 권력의 눈치를 벗어나 올바른 관점으로 기록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 MBC 문제는 어느 언론사 한 곳의 문제가 아니라 공영방송 나아가 국민의 눈과 귀와 관련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9일자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가운데 엄기영 MBC 사장이 물러나고 정권 입맛에 맞는 인물로 공영방송 사장을 바꾸려는 움직임에 문제의식을 뚜렷하게 나타낸 언론은 경향신문과 한겨레 정도이다.
경향신문 "지방선거 전 방송장악 본색"
▲ 경향신문 2월9일자 3면.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1면과 종합면, 사설 등을 통해 논조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경향신문은 1면 <엄기영 사장 전격 사퇴>라는 기사에서 “엄기영 MBC 사장이 8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이사장 김우룡)의 일방적인 임원진 선임에 반발, 전격 사퇴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엄 사장은 이날 임원진 선출을 위한 방문진 이사회가 끝난 뒤 '오늘 방문진의 존재 의미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도대체 뭘 하라는 건지, 저는 문화방송 사장을 사퇴하겠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경향신문은 이번 사태를 지방선거를 앞둔 정권의 방송장악 의도로 바라봤다. 경향신문은 3면 <'지방선거 전 방송장악' 본색…'코드 인사' 불 보듯>이라는 기사에서 “3일 MBC 엄기영 사장의 사퇴는 KBS와 YTN에 이어 현 정부의 방송 장악이 마무리 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한겨레 "선거 앞 MBC 보수재편"
▲ 한겨레 2월9일자 3면.
경향신문은 “방문진과 감사원을 앞세운 전방위 압박을 통해 엄 사장을 몰아낸 뒤 지방선거 전에 MBC 내부를 물갈이해 MBC를 장악하겠다는 '사전 시나리오'가 조기에 가시화되고 있는 분위기”라며 “지난해 12월 방문진으로부터 굴욕적인 '재신임'을 받아낸 후 후임 본부장 인선만큼은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내고자 했던 엄 사장으로서는 더 이상 물러날 여지가 없었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한겨레도 1면 <'방문진 전횡 반발' 엄기영 사장 사퇴>라는 기사에서 “이명박 정권이 <한국방송>(KBS)에 이어 문화방송 장악을 위한 본격 수순에 들어갔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3면 <선거 앞 MBC '보수재편'…MB정권 '직할통치' 노골화>라는 기사에서 “현 정권의 후반기 운명이 걸려 있는 6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상파의 우호적인 보도가 필수적인 만큼 급하게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국일보 "본질은 정권의 방송 장악 문제"
▲ 한국일보 2월9일자 8면.
엄기영 사장 중도하차는 예고된 결과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한겨레는 4면 <언론법 '끌고' 방문진 '밀고'…합법 시늉 낸 '언론 삼키기'>라는 기사에서 “문화방송은 현 정권 출범 전부터 '언론장악 1순위' 대상이었다. 두 번의 대선 패배와 정권을 위기로 몰아넣은 촛불시위의 '배후'에 문화방송과 같은 공중파가 자리하고 있다는 게 여권의 일반적인 시각이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도 8면 <'MBC 개편 갈등' 결국 폭발하나>라는 기사에서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엄 사장의 새 이사진 인선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독자적 인사를 강행한 것이 사퇴의 계기가 됐지만, 실상은 MBC 구조개편문제에 뿌리가 닿아 있다. MBC 안팎에서는 인사는 표면적 문제일 뿐, 본질은 정권의 방송 장악 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5면 <후임사장 김종오·김재철·구영회씨 3파전>이라는 기사에서 “엄 사장의 사퇴는 갑작스럽게 이뤄진 일이지만 '다소 앞당겨졌을 뿐, 예정된 절차'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라며 “특히 의견 차이가 가장 컸던 보도본부장에 권태홍 선임기자를 기용하겠다는 뜻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끝내 좌절되자 '더 이상 사장직 수행이 어렵다'고 보고 사퇴를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국민일보 "방문진, 보도 시사프로그램 겨냥"
▲ 국민일보 2월9일자 2면.
그렇다면 방문진은 엄기영 사장 반대를 무릅쓰고 어떤 인물을 MBC 이사에 앉히려 한 것일까. 국민일보는 2면 <엄기영 MBC 사장, 새 이사 선임 반발 사퇴>라는 기사에서 “방문진은 MBC의 공영성과 신뢰도를 높인다는 명분 아래 보수 성향 이사진 선임을 강행했다”면서 “(차기환 이사는) 이번 인선이 보도와 시사프로그램을 겨냥하고 있음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세계일보도 3면 <노조 "총파업도 불사"…MBC 격랑 예고>라는 기사에서 “엄 사장의 사퇴에는 이날 보수적으로 알려진 새 이사진의 선임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윤혁 신임 이사의 경우 보수 성향을 띤 MBC 선임자노조 출신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별도 해설 기사나 사설 없이 엄기영 사장 사퇴를 스트레이트 기사로 전했다. 조선일보는 1면 <MBC 엄기영 사장 사퇴>라는 기사에서 “엄기영 MBC 사장이 8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MBC 신임 이사진 구성안에 반발하며 임기 1년을 남기고 방문진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엄 사장의 사직서를 다시 반려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별도 수리 절차가 없어도 곧장 사퇴 효력을 갖는다고 방문진은 밝혔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해설기사와 사설 없어
동아일보는 2면 <엄기영 MBC 사장 사퇴>라는 기사에서 “엄기영 MBC 사장(사진)이 8일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보도 제작 편성본부장 선임에 반발해 사퇴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해설기사와 사설을 내보냈다. 중앙일보 6면 기사 제목은 <방문진 "엄기영 사표 납득 안 돼">라는 내용이다. 중앙일보 기사 첫머리는 “MBC가 격랑에 휩싸였다. 8일 엄기영 사장이 전격 사의를 표명하면서다. 엄 사장은 이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보도·제작·편성본부장 선임에 반발해 사표를 제출했다”라는 내용이다.
중앙일보 기사 첫머리만 보면 제목은 <엄기영 사퇴, 격랑 휩싸인 MBC> <엄기영 전격 사의, MBC 격랑> <엄기영, 방문진에 반발 사표 제출> 등으로 뽑는 게 합당하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방문진 "엄기영 사표 납득 안 돼">라는 제목으로 뽑혔다.
중앙일보 기사 초점과 어울리지 않는 기사 제목 왜?
▲ 중앙일보 2월9일자 6면.
이러한 제목이 뽑힌 이유는 무엇일까. 중앙일보 기사 말미에 방문진 차기환 이사가 “엄 사장이 자신의 안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사표를 낸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 내용이 나온다. 기사의 전개 과정을 보면 차기환 이사의 얘기가 핵심으로 보기 어렵지만, 중앙일보 기사 제목은 그렇게 뽑혔다.
흥미로운 대목은 중앙일보가 <방문진 "엄기영 사표 납득 안 돼">라는 제목을 뽑았지만, 기사 내용에는 엄기영 사장 사표가 왜 납득이 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일보는 “엄 사장은 끝내 자신의 추천안이 거부되자 사퇴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MBC 내부에선 '엄 사장이 방문진이 선임한 보도·제작본부장 틈에서 '식물 사장'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한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새 이사진이 보수 성향 인사로 알려지면서 노조 등의 압박을 의식한 것이란 의견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사설, 궤변 논란 자초
▲ 중앙일보 2월9일자 사설.
중앙일보 기사 자체는 사실을 전달하려 노력한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제목은 엉뚱하게 뽑혔다. 기사를 쓴 기자와 제목을 뽑는 데스크 시각이 차이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가는 대목이다. 중앙일보 시각은 <MBC는 여전히 환골탈태 필요하다>라는 사설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중앙일보는 “우리는 MBC 이사진에 누가 들어가고 빠지는 지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국민의 재산인 공중파를 사용하는 MBC가 보도·교양·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공영성과 공익성을 제대로 구현하는지 여부가 관심거리다”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임기가 남은 공영방송 사장이 물러나고 정권 입맛에 맞는 새 사장을 선임하려는 모습이 공영성과 공익성을 제대로 구현하는 모습이라고 보는 것일까. 중앙일보는 “'노영방송'이란 지적이 달리 나왔겠는가. 정확성과 공정성을 누누이 강조한 자신들의 방송강령부터 잘 지킬 궁리는 왜 안 하는가”라며 “언제까지 갈등을 부채질하면서 자신들의 잘못까지 정권 탓으로 돌리는 구태를 답습할 것인가”라고 주장했다.
경향·한겨레, 방송장악 시도 '국민적 저항' 경고
▲ 경향신문 2월9일자 사설.
중앙일보 사설은 설득력이 있을까. 아니면 궤변으로 봐야 할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이명박 정부의 MBC 장악 움직임은 성공으로 정리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언론이 눈을 감더라도 사안의 문제점과 본질을 바라보고 있는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방송장악의 완결이라고 보면 오산이다>라는 사설에서 “우리는 그의 사퇴를 무겁고 심각한 사태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언론 민주화를 정면으로 역행하는 방송장악 시도의 완결판처럼 여겨지는 것이 그 이유”라며 “이 정권은 '방송선진화'에 성공했다고 자축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방송민주화의 조종을 의미할까. 그렇지 않다. 국민적 저항이 시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겨레도 <문화방송까지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려는가>라는 사설에서 “이제 방문진은 문화방송을 완전히 손안에 넣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큰 착각”이라며 “이제 문화방송을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려는 악질적 시도에 맞서 방송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