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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N&M&C&D]

10.10.12 [진보 커밍아웃 다구리]

조중동 논리 닮은 진보 커밍아웃 요구, 대안일까?

[기고]진보되기와 진보 만들기 : 北의 권력승계 비판에 대한 역비판 (프레시안 펌)


북쪽의 권력승계 구도와 관련된 뜨거운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북에 관한한 무엇이든 생트집이라도 잡아야 하는 것을 마치 사명이라고 여기는 남쪽 수구세력의 정당, 언론, 관변단체들이야 아예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합리성과 진보성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또는 스스로 그렇게 여기는 쪽의 이야기는 엄밀히 짚어 봐야 할 것 같다.

제일 먼저 접한 것은 "통일하지 맙시다"였다. 마치 빈대가 성가셔 초가삼간을 불태우자는 막장꾼 식의 반응이다. 이런 논리가 확대·확산되면 이 세상은 아예 소멸되고 말아야 한다. 어디 세습이 정치권력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고 경제, 종교, 사회, 문화 등 다 방면에 걸쳐 비록 그 정도나 중요도는 덜할지언정 이 세상에 만연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정신에 입각해 세습의 문제를 비판하는 것은 정당성이 있으나, 그것을 비판하기 위해 더 중요한 문제들은 아무렇게나 되어도 좋다는 식의 입장은 옳지 못하다. 예를 들면 현재 미국 중심의 전쟁광들에게 지속적인 침략전쟁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그리고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전쟁의 참화 속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남한의 현실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남과 북의 평화·생명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평화·생명권을 대규모로 박탈하려는 전쟁광이 권력을 지속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미국 등의 제국주의와 이를 따르려는 아류제국주의자들이 이곳 남녘에서도 엄청나다. 그 결과 이곳 한반도에는 이런 전쟁광에 의해 냉전기간 네 번, 탈냉전기간에도 다섯 번 정도의 전쟁위기가 있었다. 이들은 지금도 온갖 핑계와 거짓으로 전쟁연습을 한반도와 동북아 인근에서 연속적으로 벌이면서 '북한급변사태대비계획'이란 이름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연일 호언장담하고 있는 판이다. 또 한반도를 넘어서 동북아까지 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다. 통일이 된다면 우리는 이런 평화·생명권 위협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그러나 북의 민주성이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지속적인 전쟁위험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말아야 한다는 "통일하지 맙시다"와 같은 주장은 합리적인 대안이기 어렵다. 또 진보는커녕 정신 나간 사람으로 조롱꺼리가 될 것이다. 이렇게 북의 민주화를 거의 절대화하면서 막장꾼 주장을 펼치는 이들은 아마도 이러한 엄청나고 기막힌 사실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을 것이다.

다음은 손호철 서강대 교수와 같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손호철 교수는 9월30일자 프레시안 기고문에서 '침묵하거나 불가피하다는' 식에서 벗어나 '비판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해야 한다.'고 진보주의자의 공개적 자기고백을 강요하고 있다. 이정희 대표 지적처럼 마치 '진보임을 인정받기'위한 자격 검증절차를 밟으라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진보주의자는 진보적 사고 수준인 진보되기에 머물기도 하거니와 더 나아가 진보만들기에 매진하는 분들이나 집단도 많고 오히려 후자가 더 필요하다. 아마 전자는 김연철 교수가 적절히 지적한 것처럼 도덕적 비판에 중심을 두고 후자는 정책적 선택을 우선시 할 것이다. 이런 차이를 불문하고 진보되기 수준의 입장에서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만들기에게 자기고백을, 그것도 공개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독선적으로 비춰진다. 북의 민주화라는 진보만들기의 현실적 방안은 공개적 자기고백이 유일한 답이 아니다. 또 진보되기는 반드시 마치 '이념적'인 리트머스 딱지를 통과하는 것과 같은 커밍아웃을 거쳐야 하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북한에 대해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언술을 하게 되면 곧바로 사법처리의 칼날을 들이대는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위력을 떨치는 신반공주의 정권 아래에서 모두가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누리고 있으리라고 전제하고 논의를 시작해보자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것이다. 공안기관이 감시의 눈초리를 시퍼렇게 뜨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누구에게라도, 또 어떤 주제더라도 입장을 밝히라는 것은 폭력이 될 수도 있다. 학문적 논쟁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 논쟁을 위한 토대가 먼저 만들어져야 합리적인 논쟁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진보는 민주성의 영역에 국한된 것도 아니고 평화, 자주, 통일, 생명권을 중심으로 하는 인권, 사회정의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민주화는 이들 다양한 진보적 가치와 관련된 총체적 구도 속에 위치되고, 평가돼야 하고, 정책적 선택이 이뤄져야 한다. 민주성이 다른 모든 진보적 가치를 압도(override)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마다 우선시 하는 가치가 다를 수는 있지만, 최소한 나로서는 생명권, 보다 구체적으로는 전쟁을 통해 자행하는 대규모의 집단 생명권 박탈로부터 해방되는 평화·생명권이 가장 우선되는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핵심진보의 가치가 전쟁광 미국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화라는 진보가치가 절대화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균형을 상실한 채, 특정 가치만을 절대화하는 현실은 대부분 진보되기 수준에 머물고 있는 이 땅의 상아탑 중심의 진보지식인이 주로 가지는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손 교수는 결론적으로 '북한 민중 스스로가 민주적 역량을 육성하고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북쪽 내부의 개선과 개조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외적 조건의 개선과 치유 없이는 공염불에 끝난다. 이 세상에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목숨을 지키기 위해, 곧 미국과 남쪽 호전세력으로부터 오는 전쟁위협을 막아 지고의 가치인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다른 진보가치에 대한 어느 정도 유보나 제한은 불가피하다는 북 당국의 논리나, 이런 논리를 주민들이 어느 정도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 엄연한 사회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외적 조건에 대한 고민이 함께 제시되지 않으면 우리의 지배 권력처럼 미국을 상수화하고, 한반도에서 미국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대안도 없는 것으로 오해받기 마련이다.

다음은 <경향신문> 10월1일자 사설이다. 사설은 민노당 대변인의 논평을 근거로 '북한은 무조건 감싸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규정짓고('규정'), '3대 세습을 비판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같이 들린다'면서('독해'), '여전히 3대 세습 정권에 희망을 걸어볼 여지가 있다는 뜻인가'라는 막장꾼 식의 질문을 던졌다('예단과 촉구'). 그러면서 '진보는 동시대의 모순을 올바로 이해해야 하며, 항상 눈을 부릅뜨고. 시대의 최전선을' 지키고 '진보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라고 주문했다('주문').

이러한 '규정, 독해, 예단과 촉구, 주문'은 민주노동당의 위상을 진보만들기의 주체가 아니라 진보되기의 대상 수준으로 격하한 느낌이다. 민노당은 평화와 통일을 중요강령의 하나로 채택하고 있고, 이를 위해 쌀 지원 등 남북의 물꼬트기와 정부차원을 넘어선 화해협력평화통일 사업을 벌이고 있는 진보만들기의 대표적 선도 집단 중 하나다. 이런 민노당이 <경향>이나 손 교수의 주문처럼 도덕적 비판을 공개적으로 강하게 표출했을 경우 진보만들기로서의 정책적 선택은 엄청난 제약을 받게 될 것은 불문가지다.

▲ 민노당의 입장 표명을 요구한 <경향신문> 사설. ⓒ프레시안
 

책임 있는 진보만들기 정당으로서 민노당은 이러한 도덕적 비판과 정책적 선택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한 고뇌를 반영한 논평을 낸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하더라도'라는 도덕적 비판과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고 보는 것이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라는 고육의 정책적 선택을 한 것이다.

물론 나처럼 당원이면서도 진보되기 수준에 머무는 위치라면 손 교수의 두 칼럼에서 계속 인용한 것처럼 다음과 같은 강한 수준의 도덕적 비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권력이 너무 개인에게 집중되고 세습되는 상황에서 벗어나 자정노력을 해야 한다. 미국의 압박 등 나쁜 조건 아래 있다고 할지라도 3대 세습까지 가는 등 인류보편적 흐름에 어긋날 경우 남과의 화해 협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말은 권력승계 구도가 나타나기 이전에 한 것이다.

그렇지만 <경향>은 이러한 민노당의 현실에서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공감적 이해(empathic understanding)도 없거니와 문자해석에도 합당하지 않게 '무조건 감싸준다'고 규정짓고, 마치 비판도 하지 않으면서 비판할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독해하고 있다. 문자적 해석에 치우친다하더라도 민노당 논평의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하더라도'에 대한 <경향>의 규정과 독해는 이미 자신의 위치에서 표명할 수 있는 도덕적 비판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간과 또는 무시하고 있다.

또 민노당의 논평 뒷부분인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고 보는 것이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는 진보만들기를 위한 정책선택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이정희 대표 지적처럼 북의 권력구조는 신중하게 접근할 문제이다. 더구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중요강령으로, 또 이의 실천을 정부차원을 넘어선 수준까지 선도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진보만들기 정당으로서는 말이다. 대북 적대도발정책 일색인 이명박 정부가 권력승계에 아주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점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이 민노당의 정책 선택 방향제시를 마치 도덕적 판단인 것처럼 간주하는 것은 이중 잣대라는 느낌을 자아내게 하고 진보만들기의 구조적 특성을 헤아리지 못하는 독해이다.

더구나 장차 북녘에 '희망을 걸어볼 여지가' 없는 것으로 예단하고 막장꾼 식의 대응을 촉구하는 것은, 진정한 의도야 그렇지 않겠지만, 마치 남북의 화해나 평화, 통일 등을 아예 논의할 가치가 없는 것이고 남북관계를 끝장내자는 식의 요구인 것처럼 들린다. 이래서 우리 한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참담하다. 그러면서 진보의 진짜 모습을 주문하는 것은 호전광들의 북한 끝장내기에 동참을 촉구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 같다. 이게 과연 얼마나 설득력있는 대책이고 대안일까?

글을 마무리한 시점에서 손호철 교수의 두 번째 글을 접했다. 그는 내가 "정말 용기 있고 애정 어린 고언을 한 것"으로 평가했다.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용기는 모르겠지만 애정 어린 고언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처럼 지식인으로서, 정치인으로서, 당원 개인으로서 북한을 평가하는 것과, 진보만들기로서 선도적 역할을 담당해야하는 공당이 공식적인 논평을 내는 것은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나에 대한 공감적 이해를 하듯이 진보만들기로서 민노당에게도 공감적 이해를 해 주시기 바란다.

민노당 내부에서도 북한 평가는 제각각이며 이번 후계문제와 관련해서도 활발한 논쟁이 있는 것으로 안다. 지금 트위터 등에서 감정적 차원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는 여러 공방은 이것이 북한 문제가 아니라 남한 정치지형의 어떤 문제 때문에 나타나는 정치공세가 아닐까 하는 염려까지 든다. 여기에 대한 고민까지 우리 진보되기 지식인은 안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