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시 철거촌에도 희망이 생기나 (민중의소리)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개발은 문제 있지 않나요?”
“언제까지 몰아내기 식 개발을 해야 하는 겁니까?”
12일 오후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지역으로 선정된 서울 광명시 소하1동 신촌마을 지역에 10대, 20대 학생 60여 명이 마을 환경을 바꾸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이 마련한 ‘도심 속 마을꾸미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이다.
신촌마을에서 40여 년 동안 터를 잡고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들에게 2007년 ‘강남순환고속도로 건설’이라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강남순환고속도로 건설은 1994년부터 계획된 서울시 시책사업으로 영등포구 양화동에서 강남구 일원동 수서IC까지 총 연장 34.8km의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소하1동은 이 도로 건설 지역 중 하나로 지난해 일부 주민이 ‘국민주택규모 특별공급 주택’을 1차로 배정받아 이주를 했지만 아직 50여 세대가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다.
남겨진 주민 대부분은 공장에서 일하거나 건설 일용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서민들로 이전을 할 경우 생계유지가 막막하다. 주민들에 따르면 시와 사업시행사인 SH공사에서는 이전비 30-35만원, 보상금 200여만 원 정도를 제시하며 주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이날 모인 학생들은 흉흉한 철거촌을 밝게 만들고자 했다. 아침 일찍부터 모인 학생들은 이 마을을 어떻게 꾸밀지 부터 토론했다. ‘이 지역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따뜻한 신촌마을’ 등을 형상화한 그림부터 이 지역에서 장사를 하는 ‘닭 가게’, ‘칼국수 가게’를 운영하는 주민들을 위한 그림까지 마을 곳곳에 그렸다.
TV로만 보던 철거촌을 처음 본 학생들은 당황스러우면서도 철거민들의 심정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얼굴에 페인트를 묻혀가며 마을 꾸미기를 하고 있던 손승아(20)씨는 “전에는 TV에서 철거민들이 투쟁하는 뉴스가 나오면 굳이 저렇게까지 과격하게 싸울 필요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실재 와보니 남 일 같지 않았다”며 “서울시와 광명시에서 주민들을 위한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벽화를 그리는 한솔(17)양은 “그림을 그릴 뿐 실재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깝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학생들을 지켜본 주민들은 “정부에서도 우리를 외면했는데 젊은 학생들이 우리 마음을 알아준다”며 기뻐했다. 20년 동안 이 지역에 살았다는 정모(65)씨는 “우리 때문에 고생하는 학생들이 뭔 죄가 있느냐”며 “정부가 학생들처럼만 우리를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주민도 있었다. 10년 전에 이곳에 정착했다는 이영자(69)씨는 학생들이 먼저 말을 걸어올 때마다 자기 사연을 소개하며 눈물부터 쏟았다.
“공사 일하는 남편 따라 이곳에 왔어. 공사 현장에 찾아다니는 남편 때문에 이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 그러던 남편은 3년 전부터 치매에 걸려 지금 아무 것도 하지 못해. 나도 중풍에 걸렸고. 어쩌겠어. 쇠라도 주우면서 먹고 살아야지. 지금 하루 종일 고물 주어서 3천 원 정도 벌고 있어. 그 돈으로 라면이랑 김밥이랑 먹으며 살고 있으니 하루하루가 고난이지. 그런데 여기에서도 나가라고 하니 이제 이 늙은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꼬.”
힙겹게 한마디 한마디를 이어가던 이 씨는 “나 같은 사람도 도와주는 학생들이 고맙다”며 또 한번 눈물을 흘렸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신혜윤(24)씨는 “잠깐 시간 내서 이곳에 왔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서 기쁘다”며 “보금자리를 위협하는 개발 현장을 보니 생각보다 열악하다.정부가 주민들에게 정확한 입장을 제시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은 지난 7월부터 매달 재개발 지역을 찾아다니며 마을 벽화 그리기, 팻말 세우기, 화단 꾸미기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까지 서울 상도동, 부천 중3동, 인천 도화동 등 6개 지역에서 이 같은 마을 꾸미기가 진행됐으며 지금까지 5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일화들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재개발 지역에 사는 한 어린이가 마을을 꾸미러 온 고등학생들에게 자동차를 갖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이 말을 잊지 않은 학생들은 잠시 토론을 하더니 집에 유일하게 있는 창문을 중심으로 해서 자동차 모양의 벽화를 그렸다. 생전 처음으로 자동차를 가진 어린이는 뛸 듯이 기뻐했고 공책을 들고 와 삐뚤삐뚤한 글씨채로 학생들의 연락처를 다 적었다고 한다.
학생들의 마을 꾸미기는 소문이 퍼져 지금 철거지역 주민들마다 자기 마을에 학생들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정도다.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 이상현 사무국장은 “재개발 지역 서민들은 우리 사회 약자 중에서도 약자”라며 “무대책으로 쫓겨나는 현실이 안타까워 작은 힘이라도 드리고자 기획하게 됐다. 앞으로 매달 꾸준히 학생들과 함께 마을 꾸미기 작업을 계속 하겠다”고 밝혔다.
<정혜규 기자 jhk@vop.co.kr>
저작권자©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
“언제까지 몰아내기 식 개발을 해야 하는 겁니까?”
12일 오후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지역으로 선정된 서울 광명시 소하1동 신촌마을 지역에 10대, 20대 학생 60여 명이 마을 환경을 바꾸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이 마련한 ‘도심 속 마을꾸미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이다.
이날 학생들은 아침 일찍부터 신촌마을에 와서 마을을 꾸몄다.ⓒ 민중의소리
신촌마을에서 40여 년 동안 터를 잡고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들에게 2007년 ‘강남순환고속도로 건설’이라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강남순환고속도로 건설은 1994년부터 계획된 서울시 시책사업으로 영등포구 양화동에서 강남구 일원동 수서IC까지 총 연장 34.8km의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소하1동은 이 도로 건설 지역 중 하나로 지난해 일부 주민이 ‘국민주택규모 특별공급 주택’을 1차로 배정받아 이주를 했지만 아직 50여 세대가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다.
남겨진 주민 대부분은 공장에서 일하거나 건설 일용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서민들로 이전을 할 경우 생계유지가 막막하다. 주민들에 따르면 시와 사업시행사인 SH공사에서는 이전비 30-35만원, 보상금 200여만 원 정도를 제시하며 주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이날 모인 학생들은 흉흉한 철거촌을 밝게 만들고자 했다. 아침 일찍부터 모인 학생들은 이 마을을 어떻게 꾸밀지 부터 토론했다. ‘이 지역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따뜻한 신촌마을’ 등을 형상화한 그림부터 이 지역에서 장사를 하는 ‘닭 가게’, ‘칼국수 가게’를 운영하는 주민들을 위한 그림까지 마을 곳곳에 그렸다.
광명시 철거촌에 10대, 20대 학생들이 찾아오면서 철거 마을에도 생기가 돌고 있다.ⓒ 민중의소리
TV로만 보던 철거촌을 처음 본 학생들은 당황스러우면서도 철거민들의 심정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얼굴에 페인트를 묻혀가며 마을 꾸미기를 하고 있던 손승아(20)씨는 “전에는 TV에서 철거민들이 투쟁하는 뉴스가 나오면 굳이 저렇게까지 과격하게 싸울 필요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실재 와보니 남 일 같지 않았다”며 “서울시와 광명시에서 주민들을 위한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벽화를 그리는 한솔(17)양은 “그림을 그릴 뿐 실재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깝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학생들을 지켜본 주민들은 “정부에서도 우리를 외면했는데 젊은 학생들이 우리 마음을 알아준다”며 기뻐했다. 20년 동안 이 지역에 살았다는 정모(65)씨는 “우리 때문에 고생하는 학생들이 뭔 죄가 있느냐”며 “정부가 학생들처럼만 우리를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주민도 있었다. 10년 전에 이곳에 정착했다는 이영자(69)씨는 학생들이 먼저 말을 걸어올 때마다 자기 사연을 소개하며 눈물부터 쏟았다.
철거지역인 신촌마을에 살고 있는 이영자(69)씨. 쇠, 고물을 주워 판 돈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그를 위한 이전 대책은 어디에도 없다.ⓒ 민중의소리
“공사 일하는 남편 따라 이곳에 왔어. 공사 현장에 찾아다니는 남편 때문에 이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 그러던 남편은 3년 전부터 치매에 걸려 지금 아무 것도 하지 못해. 나도 중풍에 걸렸고. 어쩌겠어. 쇠라도 주우면서 먹고 살아야지. 지금 하루 종일 고물 주어서 3천 원 정도 벌고 있어. 그 돈으로 라면이랑 김밥이랑 먹으며 살고 있으니 하루하루가 고난이지. 그런데 여기에서도 나가라고 하니 이제 이 늙은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꼬.”
힙겹게 한마디 한마디를 이어가던 이 씨는 “나 같은 사람도 도와주는 학생들이 고맙다”며 또 한번 눈물을 흘렸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신혜윤(24)씨는 “잠깐 시간 내서 이곳에 왔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서 기쁘다”며 “보금자리를 위협하는 개발 현장을 보니 생각보다 열악하다.정부가 주민들에게 정확한 입장을 제시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날 학생들은 토론을 거쳐 벽화를 제작했다. 한 대학생 팀은 대책없이 주민들의 마음을 담은 벽화를 그렸다.ⓒ 민중의소리
한편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은 지난 7월부터 매달 재개발 지역을 찾아다니며 마을 벽화 그리기, 팻말 세우기, 화단 꾸미기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까지 서울 상도동, 부천 중3동, 인천 도화동 등 6개 지역에서 이 같은 마을 꾸미기가 진행됐으며 지금까지 5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일화들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재개발 지역에 사는 한 어린이가 마을을 꾸미러 온 고등학생들에게 자동차를 갖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이 말을 잊지 않은 학생들은 잠시 토론을 하더니 집에 유일하게 있는 창문을 중심으로 해서 자동차 모양의 벽화를 그렸다. 생전 처음으로 자동차를 가진 어린이는 뛸 듯이 기뻐했고 공책을 들고 와 삐뚤삐뚤한 글씨채로 학생들의 연락처를 다 적었다고 한다.
학생들이 다 그린 벽화. 주민들의 정이 넘치던 신촌마을을 형상화했다.ⓒ 민중의소리
학생들의 마을 꾸미기는 소문이 퍼져 지금 철거지역 주민들마다 자기 마을에 학생들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정도다.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 이상현 사무국장은 “재개발 지역 서민들은 우리 사회 약자 중에서도 약자”라며 “무대책으로 쫓겨나는 현실이 안타까워 작은 힘이라도 드리고자 기획하게 됐다. 앞으로 매달 꾸준히 학생들과 함께 마을 꾸미기 작업을 계속 하겠다”고 밝혔다.
<정혜규 기자 jhk@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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