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룸시대', 한나라당은 끝났다." '35평 보수화'의 정치학 (프레시안)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심의 변화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선거의 의미가 무엇인지, 복기하고 분석하는 집단은 그래도 한나라당 밖에 없어 보였다. 민주당과 비교해보면 더욱 명확해 보인다.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자신들이 왜 이겼는지, 그리고 보궐선거에서는 왜 졌는지, 분석하지 않는 것 같다. 그곳에 정치는 있지만, 정책은 없고, 분석은 더더군다나 없다.
관악구에서 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당선되었다. 이 선거는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말도 많았지만, 실제로 선거 후 가장 많은 분석이 진행된 지역이기도 하다. MB 시대, 그리고 지방선거를 통해서 나타난 시사점은 끝가지 완주했던 노회찬과의 표차로 오세훈 시장이 당선된 서울이나, 막판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버텨낸 경기도지사 선거보다 훨씬 시사점이 많은 곳이다.
후일담 하나를 소개해보자. 유종필 당선자는 국회의 주요 보직 중 언제나 야당 몫이었던 국회도서관장이었다. 도서관이라는 매우 중요한 기관의 중추 역할을 하는 사서들은 "국회 도서관장이 과연 구청장 보다 덜 중요한 자리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 같다. 이와 함께 국회 도서관장은 누가 하는 게 좋을까, 과연 지금처럼 정치인이나 비서들이 그냥 위에서부터 밀고 내려와서 도서관장이 되는 것이 정상적인가? 아마 한국 정치 역사에서 처음으로 도서관장의 위상과 직무에 대해서 사서들이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이 이번 관악구청장 선거에서 생겨난 일이다. 정치적으로는 작은 변화이겠지만, 문화나 학문에서는 적지 않은 시사점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진짜 관악구에서 생겨난 큰 의미는 2000년 이후로 생겨난 정치적 흐름에 대한 반전이 여기에서 발생했다는 것이고, 그것을 한나라당이 복기를 통해서 이해했다는 점일 것이다.
요즘은 평이라는 단어를 계량의 의미로는 못 쓰게 하지만, 어쨌든 한나라당 내부에서 사용했던 중요한 표현이라서 그냥 사용해보기로 하자. 공영개발을 뉴타운으로 전환시키고, 재개발을 통해서 시민들의 평당 거주면적을 높여주면 급격한 정치적 보수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지난 10년 동안의 필승 전략으로 알고 있다. 이 전략은 대체적으로 성공한 것 같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의 약진은 아파트 평수와 어느 정도는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전통적인 정치 1번지였던 종로가 그렇게 변했고, 가난한 지역으로 알려졌던 노원구나 관악구 같은 곳들은 한나라당이 힘쓰기 어려운 지역이었으나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간단한 관계지만, 자신의 아파트가 35평이 넘어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지킬 것이 더 많아진 사람들은 한나라당을 선택하고, 자신의 정치 소신을 보수 쪽으로 전환한다. 실증적으로 더 복잡한 변수들이 많겠지만, 이런 간단한 정치 공식으로 한나라당은 뉴타운과 재개발을 정책화하는 데 성공했다. 안타까운 사실은, 지난 정부에서 일명 '뉴타운법'을 먼저 나서서 법률로 제정한 주도자들이 한나라당 의원들이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이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정치인 정동영에게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실은 그가 지난 총선에서 동작을에서 자신도 뉴타운을 공약으로 걸고 낙선한 사실인데, 그 때 그는 실익과 명분을 다 잃었던 것 같다. 그가 다시 중앙정치인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그런 '토건 공약'들에 대해서 자신이 어떤 식으로 사과 혹은 언급을 할지,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다.
어쨌든 이 '35평 보수화'라는 한나라당의 필승 전략은 여기에 민주당까지 같이 말려들면서 지난 대선을 거치는 과정에서 필승의 정치 전략이 된 것처럼 보인다. 이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은 흐름에서 반전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있었지만, 그게 실제로 드러난 것이 바로 관악구의 선거결과에 대한 해석이다.
▲ 한 학생이 올해 초 서울 안암동 고려대 후문 근처에서 하숙, 원룸 광고전단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
이 원룸 거주자들은 지역별로 여성위원회와 청년위원회 등 각종 장치들을 통해서 빽빽하게 조직을 구축해놓고 선거를 치르는 한나라당으로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새로운 집단이다. 아파트만 해도 아파트 부녀회를 통해서 온갖 루머를 뿌리고, 지하철 역사가 생긴다느니, 경천절을 뚫는다느니, 온갖 개발 장치를 집값을 올린다고 하면서 움직였던 한나라당의 지난 10년간의 수도권 공략법이 있는데, 원룸에는 그게 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해도, 한나라당식 지역 정치에서는 포착되지 않는다. 게다가 바쁘기는 또 엄청 바쁘다. 부자들만 바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도 바쁘고, 원룸 사는 사람들은 더 바쁜 것 같다.
대체적으로 이 정도가 한나라당에서 지난 지방선거에서 새로 생긴 '원룸 현상'에 대한 분석인 것 같고, 나는 그들이 어떻게 해법을 찾을지는 모르지만, 거기까지 복기를 통해서 분석하는 것을 보고 놀라기는 했다. 문제를 알면, 최소한 해법을 바로 찾지는 못하더라도 치명적인 문제점을 완화시킬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실크 세대'라는 민망한 단어에서, 'G세대'라는 빠다 느낌 나는 단어까지,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20대와 30대를 회유하기 위해서 제시한 개념들은 적지 않지만, 그런 건 원룸 사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실제 원룸까지 진출한 20대들은, 자신들의 세계에서 그런대로 성공한 편이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그렇게 대변되는 20대들의 삶 속에서 원룸 거주자는 한 편으로는 성공한 사람들인 셈이다. 그러나 G세대와는 거리가 아직은 많이 멀어 보인다. 그런 '립 서비스'로 원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표를 얻기는 쉽지 않다.
관악구만이 아니다. 서울 전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원룸은 계속해서 급증하는 중이고, 최근에는 모텔을 개조해서 다시 원룸 형태로 바꾸는 사업자도 등장했다. 이제 모텔의 시대는 끝나고, 원룸의 시대로 우리는 가는 중이다.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35평 이상의 아파트 거주자의 시대가 점점 빨라지는 디버블링과 함께 사라지고, 이제 한나라당에게 결코 우호적이거나 호의적이지 않는 원룸의 시대가 오는 중이다. 어쩔꺼냐, 이게 한국 사회의 현실인데.
한나라당이 관악구의 패배를 이렇게 분석하면서 당장 답을 내지는 못하더라도 뭔가 해법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쩌면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현 구도대로 지난 10년 동안 유효했던 보수화 전략대로 가면, 2012년에 민주당은 낙승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뭘 잘 해서가 아니라, 실제 경제구조가 그렇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원룸에 살면서 한나라당을 지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어떤 경제적 구조의 늪에 빠져가고 있는지, 약간은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서 이해했던 것 같다.
지금의 개각은 그 근원을 따져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패배에 대해서 청와대가 답변하는 형식이다. 같은 현상을 놓고,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같은 분석을 할까, 아니면 다른 분석을 할까? 같은 집권 세력이기는 하지만, 청와대와 한나라당 사이에 사태를 보는 눈과 대응 방안이 분명히 다른 것 같다. 왜 그런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개각의 메시지는 경상도 정권임을 명확하게 "힘으로 일어붙이겠다"는 것으로 비추어진다. 게다가 더 이상한 것은, 동양사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하는 승상에게도 수렴청정이라는 대리 정치를 했던 적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공부가 짧아서 그런지, 왕의 수렴청정은 봤지만, 승상도 그렇게 했던 적이 기억나지 않는다. 대통령은 상왕 형님이 있고, 그의 대리인인 박영준이 있다. 그리고 총리에는 총리가 그의 '상총리' 격인 이재오 특임장관이 있는 셈이다. 4대강 등,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메시지는 알겠고, 총리의 수렴청정을 맡은 이재오가 전권으로 나온다는 메시지도 알겠다. '차관정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장관을 우회해서 직접 통치하던 그 차관들을 이제 레임덕 현상 앞에서 전면 배치한다는 의미도 알겠다.
그러나 구도가 너무 복잡하다. 그리고 한나라당이 고민하는 '원룸 주택'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은 아예 안하는 것 같다. 자, 이 정도라면 새로운 정권의 '파워 정책'이 어떻게 새로운 레임덕을 재촉할지 보는 것도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저들은, 지금 밑바닥 민심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새로운 총리가 청문회를 통과할까? 장상이 서리를 끝내 떼지 못한 그 역사가 다시 반복될 것인가, 그것도 흥미로운 질문이다. 국회마저 힘으로 그냥 밀어붙일 수 있을까? 한나라당이 지난 지방선거 이후 부드러움과 유연으로 콘셉트를 잡으려던 순간이었는데, 청와대는 "다시 힘으로!"를 외쳤다.
나는 거시경제를 관리하기 아주 힘들어지는 하반기 이후의 국정 운영을 생각하면서 총리는 경제를 아는 사람으로 임명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었다. 이제 명백히 토건 총리, 그것도 '상총리'를 모시는 아주 독특한 구도가 형성되었다. 최근 이런저런 경로로 한나라당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던 나로서는, 아주 뜻밖의 청와대의 의사결정을 보게 된 셈이다. 지켜보는 사람의 의표를 찌르기는 했지만, 그 의표가 정권의 의표를 찌르는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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